bts fake love를 들으며_성공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내일과 같은 오늘


bts의 billboard 컴백 무대를 봤다. 
(내 인생은 안풀리지만, 잘풀리는 누군가를 보니 기분이 좋구나)

이전에도 bts가 왜 미국에서 유독 인기가 있는지 쓴 적도 있지만
무대를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성공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사. 
자막을 보면서 보고 있었는데, 순간 지나가는 가사를 보고 참 감탄했다.

 I grew a flower that can't bloom in a dream that can't come true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외국 아미들이 항상 bts의 가사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좀 더 과장해서는 인생이 바뀌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납득이 가고, 또 이는 과장이 아닌게, 실제로 대중음악은 미국인(특히 청소년)들의 삶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이돌 문화를 생각하면 대중음악에 유난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사람이든 음악이든 종합적으로 평균 이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성 자체보다는 
그 그룹이나 아티스트의 외모 + 음악 느낌 + 가사 + 최신 트렌드 + 패션 + 전반적인 느낌을 전체적으로 보고 '즐긴다'라는 측면이 강하다면 미국인들의 경우 내 인생에 이 음악을 끼워 넣을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즉 내 인생에 울리는 포인트 하나가 있으면 그 음악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고 (다른 문화권은 경험해 본 바 없어서 모르겠음. 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따라서 음악을 듣는 데 있어 가사에 더 크게 꽂히는 것 같다.


개인주의 이상한 긍정주의가 강한 만큼 미국인(특히 청소년들)은 외롭고 고독하다. 
경쟁에서 뒤쳐질까봐, 이 복닥복닥한 사회에서 누락될까봐 짜증가득한 한국인의 괴로움과는 또 다른 공허함이 있는데 
이런 외로움에 bts의 노래는 유난히 공명의 폭이 크다. 

기획사의 고도의 전략인지(아니면 소규모 기획사라 지배력이 약한지 ㅎㅎ)
bts는 기획사 색깔보다는 멤버들의 재량이 큰 것 같고 
그룹이지만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채롭고 깊이 들려주는데 
세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개인의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적인 고민과 고뇌와 절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bts는 특히 underdog로서의 외로움이 많이 부각되고
그 부분이 유난히 어필되는 측면이 큰 것 같다.

구구절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bts의 노래 가사와 퍼포먼스는 (특히 지난 앨범부터) 자기 성찰과 고뇌를 바탕으로 하는 측면이 두드러지고
그것이 외국 아미들의 공감대를 사는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이돌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깊은 차원이다)

Fake Love는 어떻게 보면 가장 흔한 이야기 - 사랑에 실패한 이야기- 지만,
사랑에 실패해서 니가 미워, 나는 괴로워, 감정에 허우적대는 이야기가 아니라(물론 노래 자체는 굉장히 emotional 하지만) 
아, 꿈에서 깼구나 - 하는 disillusionment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인생의 모든 코너에 몰린 순간,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내 인생에 절망하고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 대해 토해내지만
내가 그로 인해 얼마나 아픈지를 토로하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모두 경험하는 아픔이 바로 이거야, 라고 담담하게 전하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피운다는 찬란한 절망.문학적으로도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대중가요에 있어 이는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인게,
너 때문에 내 가슴이 찢어졌어, 울지 않은 날이 없어, 하루를 한숨으로 시작해 등등등
감정선을 건드릴 수 있는 직접적인 가사가 얼마나 많은가.
굳이 fake love는 가장 상투적이고 신파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 바로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였길래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고, 지금 나는 누구인가. 를 이야기함으로서 
보편적인 처절함에 대해 논하고, 자기연민 보다는 위로에 집중한다.

이로써 가수가 노래하지만 그 스토리와 감정은 온전히 청자의 것이 되는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사를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유투버 Sam (feat. 조커 포스터 3종)


bts의 하드코어 팬은 아니며 음악이나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이 괴로워서 가끔씩 대중문화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돈으로 주고 사야 할 지라도
그 위로가 어느 정도의 깊이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고민 위에 쌓아진 것이면 좋겠다.
(단순히 남친 여친이랑 헤어져서 힘들고, 누구에게 잘보이고 싶고, 사귀고 싶어 등등등..를 떠나)
이는 나, 청년, 우리나라 사람을 떠나 세계 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정일 것이다.

bts의 노래와 춤에는 자신들의 고민을 토대로 한 인간 보편의 성찰과 고뇌가 녹아있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보이게 하는 탁월한 표현력이 있다.
이게 아마 전세계적인 인기의 답일 것이다. 
비록 그 가사를 bts가 직접 쓴 것이 아닐지라도  
음악을 통해 아픔을 치유받고 치유받고 있는 사람들로서 아파하고 있는 다른이들에게도 동일한 역할을 해 주고 싶다는
본질적인 의지와 겸손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팬으로서는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고.

이런 측면에서 선망의 대상인 idol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동등한 동료 지구인들로서 bts가 세계적인 artist로서 인정받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ps
개인적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좋아하는 노래들;
RM의 Do you - '니맘대로 살아'라는 주제로 약 4분동안 꽉 채웠다 
Pied piper - 의외로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가사 한마디마다 자지러진다.








단상_ 비극에 관하여 내일과 같은 오늘





인생의 고통은

선한 사람이 뜻밖의 어려움을 마주하는 데 있지 않고,

악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상응하는 고난을 받는 데에 있다. 


전자는 비극이라 부르고

후자는 인과라 한다. 


우리는 인생이 질척대는 비극이라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인과 결과의 건조한 순환일 뿐.
 

비극을 체험하는 선택받은 영웅들은 희박하며,

내가 그 영웅일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In the rain 내일과 같은 오늘


Anyone runs out to greet rain
has tears to drop
`
When a self dissolves into a liquid
and the liquid defines oneself, 
then finally he shall be free
since he shall no longer linger in the midst of air
but rather, 
breaks into the ground and become nobody - into nothing. 


Endearing the vast nothingness
we look up to the sky during the rainy days
tickled by the drizzles 
may the drops confine us in that fine silky bars, and when the prison opens, 
may this sentence seize to be

But tied up tightly in this prison of leather
this flesh---

when the drops bid their farewell and so happily
jumps out to their emptiness,
One is all alone
again
silent
standing 

under this light, burning light
where nothing can hide, 
hide this cruel being
the ugliness of the truth

The truth
that we shall never get away.
One is being, and will have been being, 
forever.

 

 

레디 플레이어 원 단상(참신하게 진부해서 흥행하겠네) 미드/영화

스포일 있을 수도 있음

1. 
스필버그의 재능을 명확히 보여주는 영화였다. 다만, 그의 재능이 아주 진부한 내용을 참신하게 보여주는 능력인지, 참신한 소재도 진부하게 끌고가는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 되었건 이는 대중영화 감독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고, 따라서 그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역시나 백인 남성 악당에 의해 위기에 처한 세상을 백인(유대인?) 소년 히어로가 구한다. 샤아아 라보프가 그렇게 망가진 후에 또 비슷한 얼빵 청년을 잘도 구해서 페르소나로 써먹었다. 스필버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는 mild한 인종주의자인 것 같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특정 인종은 특정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의미. 주체적이지만 결국 리드를 당해야 하는 백인 헤로인, 성을 비틀긴 했지만 여전히 걸지고 좀 웃긴 사이드킥 역할을 하는 흑인 H, 2045년에도 여전히 사무라이 정신을 가지고 쓸데없이 비장한 일본인(토시로.. 였나?) 등등. 

특히 마지막 전투에서 건담 출동하기 전에 눈감고 명상하는 토시로..의 모습에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능 ㅎㅎㅎㅎ
아마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3.  
그래서 싫었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실 아주 재미있게 봤다. 80-90년대 B급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용납할 만한 범주에서 그런 요소들이 활용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익숙하지만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레이싱 게임 시퀀스랑 아이언 자이언트가 진격하는 모습, 건담이 출동하면서 '파-칭!'하고 폼 잡는 장면에서는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중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명확하게 안다는 점에서 스필버그는 천재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관객들이 자신들조차도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막연히 기대하는 장면들을 기막히게 잘 캐치하고, 그 기대보다도 20-30% 정도 더 정교하고 멋진 장면들을 제공해 줌으로서 상업영화의 역할을 120% 수행한다. 

특히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이랔 같은 인물의 대사들을 잘 보면 젊은 세대 감성으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웃음 코드가 있다. 
물론 여러 다른 부분들이 올드해서 조금 언발란스가 있기도 했다. 주인공의 연설이라던지, 막판에 나오는 IOI사 빨강머리 여직원 캐릭터는 너무 촌스러워서 원(그래도 70세가 넘은 노장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4.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은 할리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백투더퓨처 닥터 브라운이랑 헤어스타일 같은 것도 비슷한 게(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그렇고) 할리데이와 웨이드의 관계를 닥터와 마티 관계의 변주로 표현한 듯도 하다. 그리고 노인인 할리데이와 웨이드는 서로가 부족한 면을 보완해 주는 보완재인 동시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고, 결국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한 명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바로 감독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과 소통하기보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할리데이와 스필버그는 동일하다. 
nerd 또는 geek로서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는 겸손함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하지만 타자를 포용하기보다, 배척하는 신이 되겠다는 교만이기도 하다.
오아시스에서 할리데이의 아바타가 신적인 존재(간달프인 것 같기도 한데...)로 그려지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할리데이의 아바타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다른 아바타를 신이 자신의 피조물로 바라보듯이 때로는 자애롭게 또는 엄중하게 바라보며 심지어 유머감각도 충만하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모든 기타 유저들보다 본인이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결국 스필버그는 이렇게 모순된 스스로의 자아를 할리데이와 그 아바타로 구현해 놓고, 그 화해를 웨이드를 통해 이루어낸다. 
위에서 말한 인종적인 측면은 따라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주인공들이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5. 
그래도 그 화해의 방법은 여전히 진부하고 촌스러웠다. 
늙은 할리데이는 자신의 복제판인 젊은 웨이드에게 자신의 것을 넘겨준다(웨이드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투자해 할리데이처럼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결국 그는 할리데이가 되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다시 환원시키고 거기에 더해
더 젊고 매력적인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얻지 못했던 여성, 친구들, 부를 성취한다. 

가상현실의 달콤함도, 현실의 따뜻한 밥 한그릇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탐욕스러운 결심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래서 영화는 매우 재미있었지만, 그 그래픽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걸맞는 영화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기득권자와 기성세대의 옹고집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6. 
큐레이터 역할을 한 사이먼 페그!!!!! 
미국영어 발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뭔가 아바타가 영국인이라는 점에서 가장 재미있는 변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25센트짜리가 뭔가 있을 줄 알았다능! 한사코 안받겠다는데 주길래. 껄껄


7. 
젤 아쉬웠던 점은 아이랔? 수다쟁이 그 아저씨는 실제 세계에서 결국 누구였던 것인가... 넘나 궁금했는데 
짤린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소렌토였던가... 악역은 기억도 이제 잘 안난다.   
피날레라는 그 부하는 이글거리는 눈빛에 비해 너무 활약을 못하신 것 같아서 아쉽.
차에서 굴러 떨어질 때 낙법은 그래도 기가맥히더라. 




왜 그냥 No라고 말하지 못하냐는 인생 편한 사람들에게 내일과 같은 오늘



듣고싶지 않아도 많은 말을 억지로 들어야 하는 요즘 세상, 미투 관련해서는 이미 논의가 사회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라
한숟갈 얹고 싶지도 않지만, 최근에 들은 몇몇 코멘트가 뭔가 뚜껑을 열리게 했다. 고로 쓴다!!

'정말 원하지 않는데 왜 오피스텔로 갔느냐, 싫으면 왜 그 때 당차게 거절하고 쏘아붙이고 신고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느냐..'
'강하게 반항한 것이 아니니 여자도 즐긴 것이다'
'NO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YES인 것이 아니냐...' 등등등등

이 진부하지만 여전히 발암에 효과가 좋은 코멘트들은 형태도 가지각색이지만
화자가 누구이든 결국은 사회적인 '위력'이라는 개념과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기고백이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1도 없는 교만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항상 동일하다. 


내가 90년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는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D.A.R.E. 이라는 프로그램을 아주 철저하게 이수하게 했다. Drug Abuse Resistance Education의 약자인데 해석하자면 '마약 오남용 방지 교육' 정도 되겠다. 

여기서 내가 집중적으로 받았던 교육은 단 한가지. 'Just Say NO' 였다. 
마약의 중독성이 얼마나 강하고, 마약이 너의 인생을 얼마나 망치고 등등의 소위 '교육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학교의 Cool kids들이 마약을 권하더라도 'NO'라고 거절하라는 내용이 이 교육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어린 청소년들이 마약을 접하는 첫 계기는 친구들의 권유로 대부분 이루어지고, 
또래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멋진 그룹에 속하고 싶은 소속감으로 인해 이들은 마약을 거절하지 못한다.
마약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거절해야 하는지 알지만, 사회적인 압력으로 인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무언의 압박, 그것이 바로 '위력'이다. 

그러니까 마치 물리적인 폭력에 대처하는 호신술을 배우거나
재난이 닥칠 때 대피하는 방법을 배우듯이 
이 프로그램의 교육자들은 'NO'라고 말하는 방법 역시 학습으로 취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육을 담당한 선생님들과 경찰관들은 어린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그걸로 친구사이가 멀어진다면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니야' '마약을 거절해서 따돌림을 당한다면 그건 영예로운 거야' 하고 여러 방법으로 거절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을 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아이의 모습을 연극으로 보여준다던지, 결국 거절하지 못한 마약중독자를 실제로 불러서 강연을 듣는다던지.
실제로 위 DARE 교육은 꽤나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 미국 전역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청소년들은 인기있는 친구로부터 초대받은 파티에서 쿨한 친구들이 건네주는 마리화나에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렇듯이 거절 역시 학습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고, 학습과 훈련을 받는다 해도 'NO'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NO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영화나 드라마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상대방에게 따귀를 날리거나, 물을 뿌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내 손은 어떻게 씻을 것인지, 바닥에 김치는 치워야 하는지, 청소비 청구서가 올 것인지 드라마에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현실은 드라마와 영화와 달리 장면 전환이 되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내 엉덩이를 슬슬 만지는 과장에게 따귀를 때리거나 왜이러세요! 하면서 일어나기에는
나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 아침에 그와 반갑게 인사를 했고, 점심도 같이 먹었고, 내일도 모레도, 이레도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업무 지시를 받으며 '동료'로서 지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꽃 싸다구는 차치하고라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는 내가 회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휘두를 수 있는 마지막 칼이었다.(이후 회사를 떠나면서도 이직하는 직장에 안좋은 평판이 퍼질까봐 결국 그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성폭력을 당하면 피해자는 무조건 감정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부장이, 과장이, 그 누군가가 나를 터치하거나 부적절한 말을 할 때, 머리속에는 맹렬하게 계산기가 돌아간다.
'내가 방금 당한 일이 화를 낼 만큼 더러운 일인가? 그 더러움의 무게가 여기서 화를 내거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서 나의 1시간 후와 향후 일주일을 희생시킬만큼 큰가? 여기서 화를 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의 호구지수는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그리고 그 괴로움의 무게는 또 얼마나 클 것인가?' 그리고 계산의 답은 대부분 그냥 어색한 웃음이다. (계산기가 조금 느리면 화를 내더라도 오히려 큰 부작용이 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위력'의 개념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성' 문제에 있어서 여자들이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관념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설마 은장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회식자리에서 추행을 당하거나 은근한 성관계의 제안을 받으면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를 찔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우리 대부분은 동일한 의무교육을 받고 온순한 양이 되어 이 사회에 편입되도록 훈련받았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측면에서 더더욱 훌륭한 점수를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에 속한 우리들이 과장의 회식 제안에 억지로 웃으며 (자발적으로) 손을 드는 것처럼, 웃기지도 않은 부장의 개그에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박장대소 하는 것처럼, 성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걸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누구나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고 권력관계에서 이러한 권리 행사가 무조건 박탈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NO 의사표시를 해야 마땅하다!
단지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내 손을 주무르던 과장님과, 동료 언니에게 비밀스럽게 잠자리를 제안한 국장님은 모두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진심으로 우리가 존경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얼굴 표정도 바뀌지 않고 갑자기 나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봤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일 과장님이랑 어떻게 인사하지?'였다.  

남자인 내 친구는 '아마 군대에서 정말 친하게 지내던 선임이 어느 날 나를 추행하는 그런 기분이겠지'라고 추측했다. 
아마 그 추측이 맞을 것이다.

NO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DARE해야 하는 것, 한 존재의 결단과 단단한 신념 위에서 나올 수 있는 희귀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영웅들은 흔하지 않고, 사회는 영웅이 기준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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